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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머징 이슈] 해상도의 끝

    • 매일경제 로고

    • 2010-06-17

    • 조회 :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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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디스플레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은 점점 커지고 해상도는 더욱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구형 CRT모니터 화면과 오늘날 풀HD급 모니터의 선명한 화질을 비교해보면 누구도 ‘디스플레이 진화의 법칙’을 부인하진 못한다. 그런데 맨눈으로 픽셀 구별이 안 되는 초고화질 디스플레이가 등장함에 따라 디스플레이 업계의 고해상도 경쟁도 끝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화질을 개선해도 소비자가 인식을 못한다면 디스플레이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애플과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성능을 놓고 뜨거운 장외설전을 벌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7일 야심작인 아이폰4를 처음 공개하면서 삼성전자 갤럭시S를 겨냥한 듯한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아이폰4는 인간의 망막으로 구별이 어려운 고해상도의 3.5인치 레티나(망막)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며 “디스플레이의 미래라는 유기발광다이오드(삼성 갤럭시폰)보다도 더 나은 화질을 지원한다”고 자랑했다.

    애플은 구형 아이폰3GS의 디스플레이 해상도(480x320)를 가로, 세로 두 배씩 늘려 신형 아이폰은 무려 960×640의 고해상도를 지원하게 설계했다.

    잡스는 인간의 시력은 인치당 300개가 넘는 픽셀은 구분을 못하는데 아이폰4의 디스플레이는 인치당 326픽셀이라며 더 이상의 화소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과격한 선언을 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인간의 시력을 넘어선 궁극의 해상도를 강조하기 위해 잡스가 직접 붙인 명칭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를 은근히 폄하한 잡스의 발언에 발끈하고 나섰다. 갤럭시S에 장착된 슈퍼 AM OLED는 해상도가 260ppi(800×480)로 아이폰4보다 조금 낮지만 햇빛 아래서도 잘 보이는 강렬한 밝기와 색감, 응답속도, 명암도 등에서 우월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삼성 측은 애플이 주장하는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우위도 어차피 인치당 250픽셀만 넘어서면 육안으로 구별이 안 가기에 숫자상의 오버 스펙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양측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 픽셀이 안 보이는 완벽한 해상도란 디스플레이와 고객의 거리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이폰4의 경우 액정화면에서 한 뼘(25㎝) 거리만 유지하면 시력이 꽤 좋은 사람도 픽셀을 인지하지 못한다. 갤럭시S는 여기서 손가락 한마디를 더 붙인 28∼29㎝ 거리는 둬야 픽셀 없는 매끈한 화면으로 보이게 된다.

    두 기종 모두 현존하는 최고의 디스플레이를 달았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인 ‘궁극의 해상도’란 개념을 잡스가 또 한 번 용의주도하게 선점한 사실은 우리 기업도 인정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폰트(서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서체에 관한 수업을 도강하면서 그래픽 해상도의 변화가 수용자의 시각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잡스의 편집증은 작은 스마트폰조차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궁극의 화질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머지않아 고급 스마트폰은 사람 눈으로 구분이 안되는 300ppi 이상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표준사양이 될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문자와 사진, 동영상을 볼 때 돋보기를 들이대야 아날로그 원본이 아니라 디지털 카피본이란 흔적(픽셀)을 겨우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쳐다보는 바깥 세상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현실세계의 시각경험이 비슷해진다는 뜻이다. 이해가 잘 안 간다면 영화감독처럼 양 손가락을 겹쳐서 사각형의 프레임을 만들어보라. 손가락 안으로 보이는 세상과 바깥쪽의 풍경은 시각정보의 충실도에서 완전히 동일하다.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향상될수록 존재감이 점차 사라지고 종국에는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빈 공간의 역할만 남게 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디스플레이 해상도 논쟁은 그동안 먼 일로 간주했던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의 융합현상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일깨워준다.

    ◇해상도의 변화, 세상을 바꾼다=인터넷 초창기의 조악한 웹사이트를 회상해 보자.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는 낮은 해상도 때문에 색종이로 오려붙인 듯한 문자와 아이콘 이미지로만 구성됐다.

    당시의 인터넷 서핑은 그래픽 이미지의 조악함 때문에 낯선 사람끼리 사서함을 통해 문서를 주고 받는 행위와 비슷했다. 1990년대 후반 웹사이트의 해상도가 CRT모니터의 800X600 수준을 따라잡으면서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1998년 1월 IBM이 제작한 나가노 동계올림픽 웹사이트는 고선명 그래픽(800X600)과 효율적인 메뉴 배치로 이후 거대한 웹광고 시장을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신형 아이폰은 모바일 기기 최초로 800×600, 해상도의 특이점을 넘어섰다. 맨눈으로 픽셀 구분이 안 되는 300ppi 이상의 ‘트루 해상도(True resolution)’의 경험은 모바일 세상을 뒤집을 것이다.

    우선 모바일 광고와 모바일 커머스 시장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시각혁명은 덩치가 큰 여타 영상기기로 차례로 확산되면서 대중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으로 자연에 가까운 초고화질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다른 디스플레이 기기를 접할 때도 까탈스럽게 높은 영상품질을 요구하게 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 디스플레이 기기는 해상도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맨 눈으로 구별이 안되는 트루 해상도 지원제품과 픽셀이 감지되는 보급형 디스플레이의 두 종류다.

    디지털기기의 해상도 향상은 사람들의 전통적인 행동양식까지 바꿔놓는다. 사람들은 더 선명하게 보이는 쪽을 진실이라 믿고 그 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트루해상도를 지원하는 고해상도 영상기기의 보급은 오리지널과 디지털 카피본의 격차를 현격히 줄이게 된다.

    지금은 명화를 HD급 모니터로 온라인에서 감상해도 진품의 아우라를 도저히 재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폰의 3.5인치 트루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수십, 수백개를 붙인 초고해상도 모니터로 명화를 감상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돋보기를 대지 않는 한 명화가 디지털 카피본이란 사실은 좀처럼 발견하지 못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진품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디스플레이기기의 극단적인 해상도 향상은 원격근무, 영상회의를 더욱 활성화시켜 사람들을 지리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당신의 모습을 마치 옆에서 보는 듯한 고해상도 영상으로 누군가에게 쉽게 전송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이 지구 반대편에 있든 같은 방에 있든 서로 눈으로 확인하는 시각정보의 충실도가 같아진다. 굳이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사무실에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러 해외출장을 가야 할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된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직장동료의 개념도 바뀐다. 서울과 인도에서 각각 근무하는 기술자라고 해도 얼마든지 한솥밥을 먹는 동료라는 끈끈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지금은 HD급의 4배 해상도를 갖는 UD급 디스플레이 양산도 쉽지 않지만 스마트폰에서 경험한 생생한 시각경험은 여타 고화질 디스플레이 확산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혹자는 거주공간의 제약으로 디스플레이 기기의 대형화 추세가 둔화되면서 매출이 감소하는데 해상도 경쟁까지 300ppi급을 정점으로 멈출 경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이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잡스의 허풍과 달리 더 선명한 영상구현을 위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술은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2차원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를 더 높이는 기술경쟁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향후 3차원 입체공간에서 완벽한 홀로그램 영상을 띄우려면 지금보다 수십배의 해상도 향상이 필수다. 우리 기업에는 애플을 제칠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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