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거리를 장악한 애플이 거실로 진출했다. 3년 전 실패한 `애플TV(셋톱박스)` 방식을 다시 들고 나왔다. 스마트TV를 준비하고 있는 삼성, 구글 등과 한판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1일(현지시각)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브에나비스타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애플의 셋톱 박스 `애플TV`를 공개했다. 다음 달 시판에 들어간다.
잡스 CEO가 이날 공개한 애플TV는 지난 2007년 초 애플이 시장에 출시한 애플TV박스를 개선한 모델이다. 외형뿐 아니라 서비스 방식 등을 모두 바꿨다.
우선 크기가 크게 줄었다. 3년 전 모델보다 4분의 1 이상이 줄어 한손에 들어가는 정도다. 가격도 299달러에서 99달러로 크게 낮췄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대여` 개념을 도입한 서비스 방식이다. 새 애플TV는 인터넷에 자체 접속한 뒤 애플 콘텐츠 스토어인 `아이튠스`에서 드라마, 쇼, 영화 등을 대여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시청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은 방영 다음날부터 한 시리즈당 99센트에 볼 수 있다. 고화질 개봉 영화는 DVD로 출시되는 날부터 4.99달러에 대여할 수 있다.
잡스 CEO는 이날 “기존 애플TV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하지만 TV와 인터넷이 통합되는 영역에서는 아직 절대강자가 없다”고 강조하며 스마트TV 시장 장악에 의지를 보였다. 애플이 새로운 격전지로 노리는 `디지털 거실`은 스마트폰보다 성장세가 빠른 공간이다. 인터넷 TV세트, 비디오 게임 콘솔, 셋톱박스 등을 포함해 디지털 거실을 완성하는 기기의 출하량은 매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 2009년에는 관련 제품이 9930만개 출하됐으나 오는 2014년에는 4억3000만개 이상의 제품이 출하될 전망이다. 이는 34.1% 성장으로 PC와 스마트폰이 각각 같은 기간 동안 12.1%와 22.7% 성장하는 것과 비교해도 빠른 성장세다.
애플은 스마트TV 시장을 `가격 공세`로 잡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애플은 상호호환을 고려해 애플TV에 아이폰4와 아이패드에 넣었던 A4 프로세서를 적용했다. 덕분에 이전 애플TV 박스에 들어갔던 인텔 펜티엄M 클래스 프로세서, 그래픽, 메모리 등을 A4 프로세서 하나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60~65달러 들던 예산을 15~20달러 수준으로 크게 낮췄으며 작고 슬림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셋톱박스 형태로 거실을 장악하겠다는 애플의 야망이 쉽게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삼성, 소니-구글 등 경쟁사는 TV에 바로 웹 연결이 가능하도록 해 편리함을 높인 스마트TV를 선보이고 있다. 또 이들 제품은 애플의 아이튠스 스토어처럼 특정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아 활용도가 높다. 여기에 애플TV가 가격공세를 퍼부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A4 프로세서가 아직 풀HD급 비디오를 구현할 수 없다는 점도 약점이다.
조단 셀번 아이서플라이 소비자 플랫폼 애널리스트는 “스마트TV 시장은 앞으로 2년 이상 모바일에 이은 격전지가 될 것”이라며 “기기 제조사뿐 아니라 인터넷 미디어 등 콘텐츠와 디바이스가 모두 경쟁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애플은 이날 행사에서 아이팟 신제품들도 소개했으며 TV 재생과 멀티플레이어 게임 기능이 내장된 아이폰의 새 운용체계(OS)도 공개했다.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