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어박스 사무실은 오후 두 시만 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다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냐고? 아니아니. 등 따시고 배부른 오후 두 시가 되면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만드는 춘곤증 때문. 나는 기어박스의 막내니까, 꾸벅꾸벅 졸고 계신 선배님들을 위해 시중에 판매하는 모든 에너지드링크를 모았다. 자, 다들 이거 마시고 힘을 내요 슈퍼파~월!
[춘곤증 비켜! 우리가 간다]
[어느 것이 레드불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레드불 에너지드링크
역시 명불허전 레드불. 비싼 만큼 값을 한다. 레드불을 이렇게 작정하고 음미하며 마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대부분 살기 위해 약처럼 마셨으니까), 레드불이 이렇게 새콤한 맛이었나? 그런데 이 새콤함이 균형을 잡아줘서 지나치게 달다는 느낌이 없어 순식간에 한 캔을 다 비웠다. 레드불에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설탕의 양을 생각하면… 이거 조금 위험하다.
핫 식스 에너지드링크
보급형 레드불이라고 불리는 핫 식스. 카페인과 타우린 함량 심지어 색까지 비슷한데, 가격은 딱 반이다. 오직 맛만 미묘하게 다르더라. 어떤 느낌이냐면, 레드불의 비기를 전수받고자 오랜 시간 동안 밑바닥부터 수행을 하던 핫 식스가 가장 중요한 마지막 비밀을 전수 받지 못한 채 쫓겨나 만든 느낌이랄까? 대신 가시오가피, 홍삼농축액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재료가 가득 들었다.
핫 식스 후르츠 에너지
맛도 모양도 핫 식스의 어여쁜 막내 여동생 같은 핫 식스 후르츠 에너지. 핑크색을 입었다고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타우린, 과라나, 심지어 칼로리까지 흐르는 피는 같으니까. 상큼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탄산 덕에 그냥 탄산음료 같은 맛이다. 치장을 많이 해서인지 오빠보다는 몸값이 100원 더 높다.
번 인텐스
마시면 혀가 새빨개져서 영영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번 인텐스. 강렬한 붉은 색만큼, 그리고 패키지에 그려진 파워 불꽃만큼이나 맛도 강렬하다. 일단 너무 시다, 셔도 너무 시다. 한 모금 마시면 자동으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윙크를 날리게 될 정도. 에너지드링크라기보다는, 체리콕에 에너지드링크를 조금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다. 카페인이나 타우린 함량은 다른 음료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데… 맛은 왜 에너지드링크 맛이 아니지? 이상해.
박카스 에프
헷갈리지 말자. 박카스 에프와 디는 엄연히 다르니까. 박카스 에프는 약국에서 파는 박카스 디보다 용량이 20ml 커지고 타우린 함량은 딱 반으로 줄였다. 한 마디로 더 순해져 아무 때고 편의점에 들어가 꿀떡꿀떡 마시기 좋아졌다는 이야기. 맛은 약국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 지금 시음한 음료 중 가장 ‘약국’의 맛이 난다.
몬스터 에너지
이번 시음회에 참여한 모든 인원이 마시자마자 ‘웩! 이게 뭐야’를 연발했다. 오랫동안 방 한구석에 방치된 동남아 과일에서 나는 썩은 내를 몬스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인삼 추출물이 들어갔다는데 이건 분명 인삼의 맛도 향도 아니다.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이걸 다 마시면 정말 괴물(몬스터)로 변신할지도.
비타500 칼슘
이민호의 여친 수지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비타 500. 맛도 수지만큼 상큼했으면 좋으련만, 한 모금 마시고 이건 설탕물인가 싶었다. 아니다. 이 맛은 설탕이라기보단 시럽을 들이부은 듯한 끈적끈적한 맛이다. 먹고 나서 입맛을 쩝쩝 다시면 목까지 텁텁해진다. 속지 말자. 수지가 아무리 예쁜 얼굴과 미소로 착한 음료라고 노래해도 맛은 절대 착하지 않았다.
오로나민C 드링크
한때 기어박스 사무실에는 돌림 노래처럼 오로나민C CM송이 떠돌았었지. 생김새는 방금 80년대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고전적이고, 맛은 광고 속 전현무의 방정맞은 몸부림 같다. 컵에 따르면 컵 벽에 잔뜩 기포가 붙을 정도로 탄산이 많이 들어갔다. 다른 에너지 드링크에 비해 탄산이 월등히 많아 일반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 같다. 맛도 약간 오란씨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여기까지 마시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기는커녕 점점 더 아득해져 간다… 에너지 드링크 과음은 당신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혜민 / LIFESTYLE / 201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