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 에취”
이 소리는, 먼지에 민감한 에디터Y가 청소할 때 나는 소리다. 그렇다. 나는 지독한 비염인이다. 그 좋은 봄날엔 꽃가루 때문에 벚꽃놀이 한 번 마음 편히 가지 못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콧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면 여지없이 재채기를 시작하고 이내 콧물을 쏟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눈과 코가 빨개져 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무슨 슬픈 일 있느냐며 걱정한다. 장난삼아 실연 당했다고 말하면 열이면 열 믿는 눈치다. 독하다는 알레르기 약을 항상 들고 다닌 건 오래된 이야기다.
미에어의 탄생
지난 여름, 결혼을 앞두고 사야 할 가전을 리스트업했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꼭 필요한 것들을 적고 나니 제일 아쉬운 건 공기청정기였다. 사실은 발뮤다의 에어엔진을 꼭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난한 신혼부부의 예산으로는 턱도 없었다. 어린 남편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사주겠노라 약속하는 것으로 에어엔진은 우리의 가전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는 샤오미에서 발뮤다의 에어엔진을 똑닮은 미에어(MiAir)를 출시했다. 물론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몇 년 전이라면 중국산을 뭘 믿고 사냐고 했겠지만, 지금의 샤오미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달리 보이게 하는 기업이다. 거기다 발뮤다가 제품 소개를 부품 하나하나까지 지나치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놨으니 비슷하게 만드는 건 어렵진 않았을 것. 그나저나 황사만 주는 대륙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이거다 싶어 미에어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중국 현지에서 미에어의 가격은 한화로 하면 16만원 정도. 에어엔진이 일본 현지에서 40만원 정도인 걸 생각하면 아주 착한 가격이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몸값이 오른다는 것. 직구를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콘센트도 다르고. 구매대행을 알아보니 반올림해 30만원 정도 들더라. 미에어를 30만원에 산다면 너무 배가 아플 것 같았다. 결국 또 잊고 지내던 중, 최근 오픈마켓에서 선착순 할인을 알렸다. 수강신청을 하는 마음으로 불 같은 클릭질을 시전했고 결국 10만원대에 미에어를 손에 넣었다. 승리했도다.
그럼 이제부터 미에어와 동거하며 겪은 우리 부부의 에피소드를 차례차례 공개하겠다.
# 퇴근하고 돌아가니 어여쁜 미에어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우리집 인테리어 컬러인 화이트와 우드 톤에도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잠시 전원을 끄고 여기저기 놓고 감상해봤다. 어디에 두어도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우리나라의 공기청정기들은 덩치도 크고 납작한 모양이라 속상했는데 미에어는 늘씬하고 부피도 적다. 먼지를 흡입하는 구멍은 그라데이션처럼 감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원이 켜지면 불이 들어오는데 그 빛도 은은해 보기 좋다. 자꾸 미에어를 보고 배시시 웃고 있는 나를 발견…
# 남편은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집에 오면 냄새부터 맡고 그 다음은 냉장고부터 연다. 그런 남편을 뒤로 하고 그가 집을 비운 사이 몰래 뭘 좀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조금 태워먹었다. 창문을 죄다 열었지만 이건 백프로 걸리겠다 싶었다. 그러는 사이, 잠잠하던 미에어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미에어 전면의 초록색 불이 어느새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탄내를 알아차린 걸까. 30분쯤 후 남편이 도착했다.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다. 오호라.
# 한가한 토요일. 남편이 알바를 가고 나면 오롯이 내 시간이 된다. 소파에 누워 졸면서 TV를 봤다. 그런데 갑자기 미에어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이상하다. 여전히 초록색 불인데 왜 이렇게 미친듯 돌아가는 거지. 곧 남편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트모드 됐어?” 후덜덜. 범인은 남편이었다. 알바하면서 앱으로 미에어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 답장을 보냈다. “무서워!!!!”
# 지인에게 공기청정기를 샀다고 자랑했다. 지인도 최근 아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알아본 다음 하나 구매했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헤파필터로 샀느냐고 묻는다. 우린 그런 거 모른다고 코코넛 껍질 필터라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지인은 직접 폰으로 미에어를 검색해보더라. 그러더니 “헤파필터 맞네, 게다가 3중이야. 잘 샀어”라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헤파필터라는 게 초미세먼지까지 걸러준다나 뭐라나.
# 남편은 사부작사부작 제 손으로 인테리어 하는 걸 좋아한다. 수납장도 뚝딱뚝딱 만들고 조명도 직접 시공했다. 이번엔 베란다 벽면에 벽돌 인테리어를 한단다. 꽃가루 시즌이 지나 비염이 좀 괜찮아졌다 싶었더니 남편이 벽돌 가루와 먼지로 고행길로 안내한다. 작업이 시작되고 걱정을 단단히 했지만 어쩐지 코가 잠잠하다. 혹시 이게 미에어의 위력인 걸까.
# 극적인 효과를 확인해보려고 잘 때는 침대 맡에 미에어를 뒀다. 평소에 AUTO 모드로 해두면 전혀 거슬리지 않았는데 달랑 침대와 화장대 뿐인 좁은 침실에 들여놓고 조용히 누워있으니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앱을 켜고 수면모드를 눌렀다. 앱 배경도 잠든 것처럼 어두워지더니 조금 잠잠해지더라. 아주 고요한 편은 아니었고,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에 비해선 조용한 편이었다. 노래방에서도 잘 자는 나는 1분 만에 딥슬립!
# 살림을 챙기다 보니 전기요금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켜 놓는 미에어이기에 소비전력이 높으면 유지비용이 더 들지 모른다. 설명서에 적힌 소비전력은 1.5~75W. 오토모드로 켜둔다면 30~40W 정도로 측정되겠다. 넉넉히 40W로 잡고 계산해보면 한 달에 만원 이하 수준의 전기요금이 든다고. 우리집은 전구도 모두 LED를 사용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그보다 일 년에 한 번씩 갈아야 하는 필터 가격이 문제였는데, 발뮤다 필터가 16만원 정도하는 것에 비해 미에어 필터는 3~4만원대다. 이럴 땐 정말 중국의 아량에 놀라게 된다.
# 무딘 편이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말했다. “요즘 아침에 재채기 안 하네?” 그러고 보니 아침마다 서너 번씩은 하던 재채기가 줄긴 한 것 같다. 요즘은 하늘이 맑은 편이라 눈에 띄게 비염이 좋아졌다고 말하긴 이르다. 이건 계절이 몇 번은 바뀌어 봐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듯.
남편은 지금 중국산에 빠져있다. 미에어와 함께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뷰의 F1 미파 스피커도 손에 넣었다. 내가 못 사게 말린 샤오미의 CCTV도 여차하면 살 작정인 것 같다. 어쨌든 미에어를 통해 우리는 중국산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다. 즉, 미에어의 성능이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다. 혹시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가성비로 따지기 시작하면 절대강자다. 대륙의 다음 실수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염아영 / 기어박스 / 201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