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말이지만 볼보는 지인에게 추천하기 참 좋았다. 일단 안전이 보장되니 추천했다가 욕 먹을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싶은 볼보가 생겼다. 바로 S60 T6 R-디자인이다. 섹시한 디자인과 볼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과감한 컬러. 게다가 가장 강력한 엔진을 품은 스포츠 세단이다.
새빨간 세단을 타는 기분은 늘 새롭다. 가장 보수적인 보디 타입에 발칙한 컬러 조합 자체가 비딱한 취향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컬러 선택이 늘 지루했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보는 것을 권한다. 보기만 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니까. 눈 앞에 나타난 볼보 ‘S60 R-디자인’도 그랬다. 아주 새빨간 솔리드 컬러를 진득하게 바르고는 발칙한 세단을 자처했다. 뒤에 붙은 ‘R-디자인’ 배지는 일종의 계급장 같은 존재다. 보통 S60보다 더 멋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싸움도 더 잘한다.
갖고 싶게 만드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R-디자인 전용의 범퍼 디자인과 레이시한 5-스포크 휠, 그리고 트렁크 리드 위에 살짝 올라 간 리어 스포일러가 마음을 뺏었다. 이렇게 소소한 차별화는 은근히 매력적이다. 과거에는 나만의 애마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면, 이제는 메이커에서 완벽한 파츠를 제안하는 셈이다. 자기 자식 같은 모델이니 몸매나 비율이나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완벽한 피팅감도 놓치지 않고 있다.
파워는 현존하는 볼보 라인업 중 최강이다. 매우 심플한 ‘드라이브-E’ 엔진 라인업 하나로 306마력을 달성했다. 고작 2.0ℓ짜리 4기통 엔진 주제에 300마력을 넘기는 비결은 터보와 슈퍼차저의 콜라보레이션. 뾰족한 기술력은 아닐지언정 희귀한 기술력임에는 틀림없다. 컨셉은 야무진 역할 분담이다. 슈퍼차저는 저회전 영역에서, 터보차저는 고회전 영역까지 서로 잘 하는 일을 나누어 분담한다.
하나가 하는 일을 둘이서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둘의 호흡이다. 아무리 잘난 슈퍼차저와 터보가 만났다 하더라도, 불협화음이 나면 하나만 못하다. 현장에서 S60 R-디자인은 교보재 같은 실력을 발휘했다. 시작부터 부드럽고 통쾌하게 파워를 토했다. 기어트로닉 8단 자동변속기는 노련하게 파워를 나눠 쓴다. 스포츠 모드에서 호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허세도 없다.
S60 R-디자인은 막무가내로 달리기를 권하는 타입은 아니다. 볼보의 천성이 그랬다. 늘 부드럽고 안정적이고, 그래서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호기롭게 달리기를 포기했다. 승차감도 잘 달리는 독일 스포츠 세단과는 거리가 멀다. 울퉁불퉁한 강변북로를 빠르게 달려도, 잔 충격은 시트 밑에서 다 녹여 버린다. 이렇게 여유 있는 승차감은 호불호가 분명하다. 신분 자체가 스포츠 세단이기 때문이다.
엔진은 명품 아이스크림처럼 풍부하고 부드럽게 돌아갔다. 흔히 말하는 터보랙도 없이 말이다. 외모에 힘을 잔뜩 실었지만, 틈만 나면 고상한 고급 세단처럼 내숭을 떨었다. 차라리 대배기량 세단처럼 느긋하게 누리는 편이 더없이 완벽한 실력을 발휘한다. 시도 때도 없이 뜨거운 세단보다 차라리 이 편이 낫다. 쉽게 질리지도 않았고, 그게 역시 볼보답다고나 할까?
김장원 / 기어박스 / 201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