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폭탄처럼 충격적인 옷 #비키니를 아십니까?

    •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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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키니

      ⓒ google

     

    7월 5일은 여름 패션의 대명사인 비키니의 날이다.

    매년 7월 5일이 되면 셀러브리티들이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들이 SNS를 통해 실시간 올라온다.

    이런 모습은 사실 70여 년 전만해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였다.

    비키니는 1946년 7월 5일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드에 의해 탄생됐는데 그 당시 비키니는 노출이 심하다는 이유로 모델들조차 착용을 거부할 정도로 파격 그 자체였다.

    비키니의 이름의 유래에서도 얼마나 파격적인 제품이었는지 알 수 있다.

     

      ⓒ 사진 루이 레아드 비키니 구글

     

    비키니 이름의 유래는 1946년 미국이 원자·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한 남태평양의 ‘Bikini’란 산호섬에서 유래됐다. 루이 레아드는 파격적인 디자인인 수영복을 파리의 패션쇼에 선보였는데 이름을 고민하다 ‘원자폭탄 같이 충격적이다’라는 점에 착안해 ‘비키니’라는 이름을 짓게 됐다. 원자폭탄 실험은 7월 1일이고 4일만에 비키니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비키니는 상의와 하의가 분리되어 있는 여자 수영복으로 ‘투피스 수영복’ 또는 ‘세퍼레이트 수영복’이라고 불렀다. 비키니가 나오기 전까지는 원피스 수영복이 전부였다.

    네 장의 삼각형 천과 끈으로 만들어진 당시 기준으로는 속옷으로도 파격이었을 의상이었다. 패션모델들이 쇼를 거부하는 바람에 루이 레아드는 19세 누드댄서 미쉘린 베르나르디니(Micheline Bernardini)를 모델로 기용했다. 파리의 유서 깊은 한 수영장(Piscine Molitor)에서 비키니를 선보였고 사람들은 원자폭탄 만큼이나 충격에 빠졌다.

     

    ⓒ 사진 미쉘린 베르나르디니 비키니 구글

     

    이 때문에 교황청은 비키니를 ‘부도덕한 옷’이라고 비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착용을 금지시키기는 일도 발생했다.

    비키니를 고안한 루이 레아드는 사실 기계 기술자다. 40년대 어머니의 속옷 사업을 물려받아 의상 디자이너가 됐는데 그 당시 초보 디자이너로 사람들의 이목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됐다. 그래서 디자인보다 여성의 몸의 맵시를 더 중시했고 또 기술자로서 맵시보다 기능을 더 따졌을지 모른다. 루이 레아드는 세인트토파즈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던 여성들이 더 멋진 태닝을 위해 수영복을 걷어 올리는 걸 보고 비키니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보다 더 작은 수영복”이 비키니의 광고 문구였다.

     

    ⓒ Google

     

    비키니 전 여성용 투피스 수영복이 등장한 건 1930년대였고 1946년 5월 자크 하임(Jacques Heim)이라는 디자이너가 스스로는 노출의 한계라고 여기며 야심차게 투피스 수영복 ‘아토메 Atome’를 출시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이라고 선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 아토메보다 더 작은 수영복이 비키니로 루이 레아드의 비키니는 여성의 배꼽을 노출한 첫 의상인 셈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기원전 1400년 고대 그리스의 고분에서 비키니와 흡사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당시 운동복의 일종의 추측되고 있다.

    레아드는 “결혼 반지 사이로 통과하지 못하는 투피스 수영복은 진짜 비키니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 비키니의 역사

     

    ⓒ 사진 브리지트 바르도 구글

     

    비키니의 탄생은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1950년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행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영화배우겸 가수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비키니를 즐겨 입으면서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가슴과 허리 부분을 더욱 대담하게 파낸 ‘미니 비키니’가 출시됐고 중간중간 원피스 수영복이 복고풍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여성들이 비키니를 자주 찾으면서 선글라스도 덩달아 인기를 누렸고 이때부터 강렬한 색상에 몸매를 두드러지게 강조한 수영복이 대세가 됐다.

    또 한 번의 비키니 충격은 1964년 출시된 모노키니(Monokini)다.

    모노키니는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 패션 디자이너 루디 건릭에 의해 탄생된다.

     

    ⓒ 사진 모노키니 구글

     

    루디 건릭은 격변하는 1960년대의 패러다임을 가장 잘 표현한 디자이너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새 시대에 맞춰 오뜨 쿠튀르가 제안해왔던 구태의연한 아름다움이나 겉치레에 불과한 예의범절을 타파하며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루디 건릭의 혁신성은 무엇보다도 그가 옷보다 옷 아래의 신체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비닐과 같은 비치는 소재를 이용해 신체를 노출하는 의상, 모노키니(monokini), 노브라 브라(No-bra bra), 끈 팬티(thong), 퓨비키니(pubikini) 등 그의 전위적인 작품들에는 신체를 자유롭게 하고 몸의 노출이 음란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라는 건릭의 신념이 잘 나타나 있다.

     

    ⓒ 사진 울저지 수영복 구글

     

    그의 첫 신호탄은 1952년에 발표한 브래지어가 달려 있지 않은 울 저지(wool Jersey) 수영복이었다. 1955년에 발표한 5개의 단추로 앞 중심을 여미는 울저지 수영복은 크게 인기를 끌어 다른 업체들에 의해 많이 복제되어 판매되기도 했다.

    이후 1953년 건릭은 몸에 밀착된 합성섬유 니트 저지로 만든 미니 튜브 드레스를 발표했고 1964년 6월 건릭은 토플리스(topless) 수영복 모노키니(monokini)를 잡지 ‘룩’과 ‘우먼즈 웨어 데일리’에서 발표하며 이 토플리스 수영복에 전 패션계가 경악했다. 모노키니는 멜빵과 같은 두 개의 끈이 달린 하이 웨이스트의 비키니 하의 형태를 한 수영복이었는데 상의가 없어 가슴이 그대로 노출됐다.

    미국과 여러 다른 국가에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킨 모노키니의 판매는 약 3000벌 정도였고 실제 착용은 단 두벌이었다.

     

    ⓒ 백화사 Google

    한국에서 비키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61년으로 추정된다. 백화사라는 업체가 여성 해방의 상징이자 젊음의 새로운 문화코드라면서 비키니를 선보였고 브랜드명이 ‘상어표’이다.

    출처: 패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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